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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어, 독살의 비약으로 이용되다 - 2010년 04월 01일(목)
작성일 2010년 04월 01일, 관리자 조회수 2,852회
복어는 온대에서 열대에 걸쳐 널리 분포하는 연해성 어류로서, 경골어류 복어목 복과 어류의 총칭이다. 세계적으로 약 120여 종이 서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것은 약 18여 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먹을 수 있는 복어는 복섬, 졸복, 자주복, 까치복, 황복, 밀복, 검복, 흰점복, 개복치 등 주로 참복어과에 속하는 어종이다.

몸이 뚱뚱하고 등지느러미가 작은 것이 특징인 복어는 배를 볼록하게 불리는 성질이 있다. 이는 놀라거나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위에 있는 팽창낭으로 물이나 공기를 잔뜩 들이마시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의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서 눈을 감을 수 없지만, 복어는 눈을 감았다 떴다 할 수 있다. 눈 가장자리에 윤상근으로 된 눈꺼풀 비슷한 안검이 있어서 카메라 조리개처럼 닫았다 열었다 하는 것. 모래를 파고 그 속에 숨는 습성을 가진 복어는 모래 속에서는 눈을 감고 있다.

또한 복어는 성질이 사나워 앞에서 얼쩡거리는 것은 무엇이든 날카로운 이빨로 마구 물어뜯는다. 일반적으로 껍질 빛깔이 흑색이나 청록색을 띠는 것은 독이 없고, 적갈색을 띠는 것은 독성이 강하다.

복어 중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복어는 복어 조리사 자격증을 지닌 자만이 요리가 가능하다. 즉, 복어는 단일 종목 자격증이 필요한 유일의 음식인 셈이다. 그런데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은 조리사 자격증 가운데 가장 따기가 힘들어, ‘복 고시’로 불릴 정도다. 특히 복어 회의 경우 일반 생선회와 달리 독을 피해가면서 육질을 살려야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벽부’라는 불후의 작품을 남긴 중국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는 복어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그는 양주를 관리하는 장관으로 근무하면서도 틈만 나면 복어 낚시를 다니느라 정사를 게을리 했을 정도였다. 복어에 대한 시도 남긴 소동파는 복어를 일컬어 ‘사람이 한 번 죽는 것과 맞먹는 맛’이라고 극찬했다.

복어는 특히 수컷에 들어 있는 흰색의 이리(정소)가 1등 요릿감으로 꼽힌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복어의 이리를 서시유(西施乳)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시는 중국의 고금을 통해 가장 아름답다는 절세미인인데, 복어 이리의 맛이 서시의 젖가슴에 빗댈 만하다는 의미이다.
복어의 이런 기막힌 맛은 미국에서도 인정받았다. 일본 시모노세키 복어조합은 식품안전시험을 거친 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승인을 받아 복어 회를 미국으로 수출했는데, 뉴욕에서 복어 회를 세계 3대 진미 식품인 캐비어(철갑상어 알), 푸아그라(거위 간), 트뤼프(송로버섯)에 더해 세계 4대 진미식품으로 선정한 것.

진기한 맛, 3월의 시식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복어를 먹은 것으로 보인다. 김해 수가리의 신석기시대 패총에서 대구, 농어, 가오리 등의 어류 뼈와 함께 졸복의 뼈가 출토되었기 때문.

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를 보면 복어는 3월의 시식(時食)으로 기록되어 있다. “복사꽃이 떨어지기 전 하돈에 파란 미나리와 기름, 간장을 섞어 국을 끓이면 그 맛이 진기하다”는 것.

중국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는 복어 마니아로 유명하다.

‘증보산림경제’와 ‘규합총서’ 등의 서책에도 복어 독의 제거 방법 및 조리법 등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복어 요리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조선 정조 때의 실학지 이덕무가 지은 ‘청장관전서’라는 시문집을 보면 복어 요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하돈은 먹어서 안 되니 자손들을 경계해야 한다. 습속에 물들기 쉽기 때문이다. 하돈을 먹고 설사 죽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요행이다. 하돈에는 참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이 있는데 어찌 차마 나의 뱃속에 넣을 수 있으랴?”

성종이 웅천에서 일어난 급사 사건을 보고받고 바로 복어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조선 시대에는 복어 독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강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문 사대부 중에서 복어 요리를 매우 즐겼던 이가 있었다. 숙종 때 영의정을 여덟 번이나 지낸 최석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709년(숙종 35) 2월 21일자의 숙종실록을 보면 “최석정이 하돈을 먹고 거의 죽을 뻔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그의 복어 독 중독 사실이 이처럼 실록에까지 기록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영의정이던 최석정은 예전에 자신이 편찬했던 ‘예기유편’으로 인해 노론 세력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었다. 예기유편은 궁중 의례 문제로 예송논쟁을 겪은 이후 이를 정리해둘 필요성을 느낀 최석정이 ‘예기’의 원문 중 뒤섞인 것을 바로 잡고 빠진 것을 보충해 다시 세밀하게 정리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편집 방식이 주자의 ‘의례통해’를 모방하기는 했으나, 주자와는 조금 달리 그의 독자적인 견해에 따라 내용을 분류되어 있었다. 소론의 영수이던 최석정의 이 같은 ‘예기유편’에 대해 노론 측에서는 이의를 제기하며 판각을 부수고 책을 불태울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숙종이 이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며 강경 대응을 하자 노론 세력은 향촌 유생들의 참여를 유도했는데, 양주 유생 최유태가 최석정을 비난하며 노론계 유생들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통문을 팔도에 돌리기에 이르렀다.

하필이면 왜 하돈인가?

이에 소론 측에서는 최유태라는 사람이 유생이란 이름을 가장하고 통문을 보내 대신을 모함한다고 반박하는 등 사태가 점차 커졌다. 그런데 하필 이때에 최석정이 복어를 먹고 거의 죽을 뻔했는데,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이 그 같은 사실을 남구만의 다음 말과 함께 적어 놓았다.

“저술할 만한 글이 한 가지만이 아닌데 하필이면 예기유편이고, 먹을 만한 물건이 매우 많은데 하필이면 하돈인가?”
노론 측의 영수인 송시열도 복어 요리를 꽤나 즐겼던 모양이다. 역시 소론계이자 최석정의 스승이었던 남구만으로서는 노론 측에 의해 궁지에 몰린 최석정이 몹시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남구만의 이런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노론계 유생들의 공세가 계속되자 최석정은 그해 6월 영의정에서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숙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해인 1710년 숙종은 간행된 예기유편을 모두 모아 불태워 없애도록 지시했다. 이후 숙종은 노론계 인물을 정승으로 발탁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노론 측의 손을 일시적으로 들어주었다.

한편 최석정 사건 때에는 이미 사망하고 없었지만, 노론 측의 영수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송시열도 복어를 꽤나 즐겼던 모양이다. 송시열의 문집인 ‘송자대전’에 의하면 한번은 송시열이 부여에 들린 적이 있는데, 고을의 원님이 직접 나와서 접대한 밥상을 보고 송시열이 매우 반가운 기색을 했다고 한다. 때는 늦은 봄이었는데, 삶은 복어가 밥상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밥상 위의 복어를 가리키며 “이 늙은이가 본디 이 고기를 참 좋아하나 산중에만 쳐박혀 있다 보니 먹어 본 지가 오래되었다”고 말했다. 이에 옆에 앉아 있던 윤증이 “이 고기가 맛은 참 좋으나 가끔 그 독성으로 인해 중독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대답했다.

윤증은 본래 송시열의 뛰어난 제자였으나, 후에 송시열의 주자학적 조화론과 의리론만으로는 변모하는 정국을 바로 잡을 수 없다고 스승을 비판한 이다. 또한 윤증은 최석정이 예기유편을 편찬할 때 함께 강론을 하며 도움을 준 바 있다.

노론과 소론은 한때 서인으로서, 함께 남인에 대립하던 동지 사이였다. 그러나 1683년 노장파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노론과 소장파 한태동을 중심으로 하는 소론으로 분파한 이후 중종 대부터 경종․영조 대에 이르기까지 두 계파가 정국을 양분하며 사사건건 대립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치적, 학문적 동지로 지내던 사이에서 한순간에 서로를 헐뜯는 원수지간이 되어버린 이들의 운명이 세계 4대 진미로 꼽히면서도 가장 치명적인 독을 지닌 복어와 묘하게도 대비된다.

이성규 기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0.04.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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