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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을축년 대홍수의 데자뷰
작성일 2011년 08월 02일, 관리자 조회수 1,768회
설계치를 뛰어넘는 경우도 대비할 수 있어야
2011년 07월 29일(금)
 
“판의주목사 이상흥은 장 80에 해당하고 판관 김상안 등은 장 90에 해당합니다.” 세종 13년 11월 18일 형조는 그해 6월에 큰물이 져서 민가가 떠내려갔을 때 낮은 지대에 사는 백성들을 일찍이 옮겨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곳의 담당 관리들에게 벌을 줄 것을 세종에게 청했다.
이로부터 10년 뒤 세종은 측우기를 만들어 관상감과 각도의 감영에 배치하고 우량을 측정하도록 했다.

우리나라 하천에 근대적인 홍수기록시설이 설치된 이후 겪은 사상 최대의 물난리는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였다. 이 해 7월 초순부터 9월 초순까지 두 달 동안 강우전선이 남북으로 이동하면서 전국에 네 차례나 물폭탄을 퍼부었다.
 
1차 물난리는 7월 11일 황해도 이남 지방에 300~500㎜의 비가 내려 낙동강, 금강, 만경강 등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로부터 닷새 뒤인 7월 16일 임진강과 한강 유역에 다시 집중호우가 쏟아졌는데,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내린 비의 양이 650㎜에 달했다.
 
이때 한강 수위는 한강인도교 11.66m, 구용산 12.74m, 뚝섬 13.59m를 기록했다. 용산에 있던 표고 약 23m의 철도관사는 1층 천장까지 물이 찼고, 뚝섬과 마포 지역은 거의 완전 침수 상태였다.
 
또한 이때 내린 폭우로 인해 잠실의 운명이 바뀌기도 했다. 잠실은 원래 강 북쪽의 자양동에 붙어 있던 반도형의 땅이었다. 옛 지도를 확인해 보면 당시 한강의 본류는 잠실 남단인 지금의 석촌 호수를 거쳐서 흐르던 송파강이었다.
 
그런데 조선 때 발생한 홍수로 인해 한강물이 넘치면서 잠실과 자양동 사이에 지류가 생겼다. 이 샛강을 신천이라 했는데, 평상시에는 그리 넓지도 않고 깊지도 않아 배 없이도 건널 만했다.
 
하지만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이 샛강이 넓고 깊어져 잠실에서 자양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를 타고 건너야 할 정도로 지형이 바뀌어 버렸다. 이처럼 섬으로 남아 있던 잠실이 다시 육지가 된 건 1971년의 매립사업 이후였다.
 
그때 정부는 샛강인 신천강의 너비를 더 확장하는 대신 본류인 송파강은 땅으로 메워 강북의 잠실을 강남으로 바꾸어 버렸다.
 
피해액이 1년 예산의 58%
 
한강의 지도를 바꾼 을축년 대홍수로 인한 피해는 엄청났다. 2개월간 네 차례에 걸친 물난리로 인해 전국에서 사망자 647명, 가옥 유실 6천363호, 가옥 붕괴 1만7천45호, 가옥 침수 4만6천813호에 이르렀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1년 예산이 1억7천800만 엔이었는데, 을축년 대홍수로 인한 피해액이 무려 1억300만 엔에 달했다. 1년 예산의 58%에 해당하는 엄청난 피해를 당한 셈이었다.
 
최근 며칠간 계속된 폭우로 인해 서울 및 경기, 강원 지역에서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집중호우란 원래 신문기자가 지어낸 말인데, 이 현상에 대한 기상 상황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거의 기상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집중호우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1시간에 30㎜ 이상이나 하루에 80㎜ 이상의 비가 내릴 때 또는 연강수량의 10%에 상당하는 비가 하루에 내리는 정도를 말한다. 보통 집중호우는 반경 10~20㎞ 이내의 좁은 지역에 수십 분에서 수 시간 집중적으로 내린다.
하지만 이번에 내린 비는 그보다 지역이 훨씬 넓을 뿐더러 우량도 훨씬 많다. 이미 쏟아진 비의 양이 연강수량의 50%에 육박하는 지역도 있을 정도다. 이만 하면 가히 ‘집중폭우’인 셈이다.
 
그런데 을축년 대홍수와 이번의 물난리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을축년 대홍수가 일어나기 이전 총독부에서 세운 한강개수계획은 1초당 2만톤의 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안전치를 고려한 상당히 여유 있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을축년 대홍수 때는 한강인도교에서 1초당 3만2천300여 톤의 물이 흘러내렸다. 당시 하천 행정 담당자들은 한강 수위가 그리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그 예측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이로 인해 당시 총독부에서 근무하던 가지야마란 일본인은 우리나라 하천 통계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량과 홍수량 예보에 관한 공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시간당 100㎜ 이상 쏟아져
 
이번에 특히 서울 강남을 쑥대밭으로 만든 물난리 역시 설계기준치의 예측을 뛰어넘는 바람에 그 피해가 더 컸다. 30년 빈도에 맞춰 만들어진 서울 지역의 하수관이 처리할 수 있는 강수량은 시간당 75㎜이다.
 
그런데 지난 27일 오전 서울에는 곳에 따라 시간당 100㎜ 이상의 비가 쏟아졌다. 하수관이 처리할 수 있는 한계치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더구나 하수관 안에는 흙이 퇴적되어 있어 설계 당시보다 빗물처리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아스팔트 위주의 도시 개발도 침수 피해를 키운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는 도심의 경우 비가 스며들 맨땅이 거의 없다. 따라서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한 빗물은 내리자마자 빠른 속도로 하수구로 흘러가 버린다.
 
갑작스레 폭우가 내릴 경우 도시 부근의 하천이 넘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수구의 배수구가막혀 빗물이 제대로 빠지지 못하게 되면 도심 전체가 물에 잠겨 버리게 된다.
 
이번 물난리로 인해 우리도 물이 흡수되는 투수 아스팔트를 도입하고 도시 하천 유역의 홍수를감당할 수 있는 대규모 저류조와 레인가든 등을 건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1.07.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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